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정 전투 (문단 편집) == 공성계를 사용했다는 주장 == 촉지 제갈량전에 주석으로 달린 곽충삼사[* [[곽충]]이 언급한 세 번째 일(郭沖三事)이란 뜻으로, 정확히는 제갈량의 알려지지 않은 장점 다섯 가지 중 세 번째이다. 자세한 것은 [[곽충]] 문서 참고.]에서는 제갈량이 양평관에서 [[공성계]](空城計)를 썼다고 나와 있다. 사마의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양평관 인근에 도달했는데 이때 촉군의 주력 병력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러자 제갈량은 군사들이 함부로 진영을 나가지 않도록 하고 성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이하듯 준비했다. 그러자 의심이 많은 사마의는 오히려 복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병력을 후퇴시켰다. 이후 뒤늦게 안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당했다며 크게 후회했다. [[두우]]가 저술한 통전 153권 시강(示強)편에도 이 일화가 실렸다. 이 공성계에 대해 [[배송지]]는 사실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당시 사마의는 형주 도독으로 완성(宛城)을 진수하고 있었고, 제갈량과 충돌할 일이 없었다. 또한 곽충의 말대로라면 사마의는 당시 촉군의 규모 자체는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복병을 우려했다면 잠시 공격을 멈추고 방어 진지를 구축하는 정도로 족하지 곧바로 후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제갈량의 공성계 일화가 정사에 기록되긴 했어도 배송지는 거짓이라고 반박했고, 곽충삼사에서는 공성계를 실행한 시점이 1차 북벌을 실행한 직후로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